1987

 

 

 

 1987년 겨울은 추웠다. 그 해 나는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막 합격하였고 3월 입학을 위하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도 말기에 접어들었건만 아직도 암울한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871월에 일어난 한 대학생의 고문 치사 사건은 처음에는 신문의 단면으로 처리되었으나 날이 갈수록 사건의 조작, 은폐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 이 학생의 억울한 죽음은 876.10항쟁으로 까지 이어지는 기폭제가 되어 역사의 길이 남을 사건으로 기록이 된다. 그리고 나도 그 시대를 살았던 20대 초반의 청춘으로 그 역사와 함께 했다.

 

영화‘1987’은 바로 871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벌써 이 사건이 있은 지도 30년이 지난 것이다. 언젠가는 이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어서 감회가 깊었다.

 

한 학생이 경찰의 고문 끝에 목숨을 잃고 만다. 경찰은 별거 아니라는 경찰 수뇌부의 한마디와 함께 이 사건을 은폐하고자 서둘러 화장을 하고 덮으려고 하였으나 뜻밖으로 검사의 거부에 부딪쳐 시도가 좌절된다. 이후 사건은 기자들에 의하여 세상에 전모가 드러나게 되고 끝까지 죄를 은폐, 조작하려는 시도와 함께 추한 거래가 지속된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과 용기가 거듭되면서 독재정권과 그 정권의 하수인들도 몰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런 세상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이다. 늘 그래왔고 보란 듯이 눌러 왔었으니 말이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사건이 시작된 이후부터 경찰들의 조작 의혹, 정권의 조직적인 은폐 지시를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여기에 맞서는 쪽은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 압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껏 업무에 임하는 공무원들이 있다. 이들이 정권이 말기에 이르고 있음을 알고 그랬는지 정의를 위하여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이들의 노력이 이어 지면서 진실들이 밝혀져 결국 흐름을 바꿨던 것이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 힘도 없이 그냥 죽어간 학생, 그의 부모는 울부짖고 그저 조용히 할말 없다는 넋두리밖에는 할 게 없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도대체 왜 경찰은 그렇게까지 해서 학생을 죽여야 했는지.. 세상이 정상이 아니기도 했지만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비뚤어진 경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 하나가 죽어 나가도 그게 빨갱이라면 상관 없고 본인들은 국가를 위해 일을 했다는 왜곡된 국가관으로 뭉쳤던 그들. 국가가 그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던 그들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대학 신입 여학생은 우연찮은 기회에 광주의 진실을 목도하게 되나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 그녀는 말한다 이런 다고 세상이 바뀌냐고그러나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결국 세상은 바뀌게 된다. 비록 그것이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을 지라도..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고 시나리오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우리 현대사의 한 장면이 내가 실제로 겪었던 시대이기도 해서 공감이 많이 됐다. 보통 사람들이 움직이고 함께 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진리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여주인공이 떨쳐 일어나 합류하는 마지막 장면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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