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아전쟁이란.. '대동아'란 동아, 즉 동아시아에 동남아시아를 더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1940년 7월 일본이 국책요강으로 '대동아 신질서 건설'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한 직후인 1941년 12월 10일에는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부르기로 결정하였으며, 같은 달 12일에는 전쟁 목적이 '대동아 신질서 건설'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전에도 일본은 중국의 둥베이 지방, 즉 만주를 침략하기 직전인 1931년에 일본·조선·만주·중국·몽골의 다섯 민족이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일본과 만주가 블록을 결성해야 한다는 '일만(日滿) 블록' 같은 슬로건을 선전하고 있었다. 일만 블록의 슬로건은 만주를 점령한 후인 1933년에는 중국을 합한 '일만지(日滿支) 블록'으로..
나치 독일의 선전상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 그는 나치 독일을 정책적으로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특히 당시 태동했던 라디오,TV를 이용한 대중선전에 대단히 능하였는데, 그의 행적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언론관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어 정부가 연주해야” 한다. 언론을 ‘부패의 전령이자 몰락의 인도자’로 대표가 되는데 그 원칙에 따라 수많은 좌파언론을 폐간시키고, 나치정부의 이념을 활용하는데 언론을 적극 활용하였다. 나치독일이 어떤 체제였는가는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치가 언론을 이용한 대중에 대한 기만, 선전선동을 계속 함으로써 제국이 이어졌다는 것이며 몰락 또..
by krawlito 2009년 1월 20일 새벽에 벌어진 이 일이 일어난지도 300여일이 다 되어간다. 비극이 일어난 구조적인 문제, 진압당시의 책임 소재, 보상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사건은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사건의 당사자들만 외로이 현장에 남아 메아리 없는 외침만 토해내고 있을 뿐이다. 도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낡은 환경을 개선하여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야 누가 없겠는가. 본인도 20여년전 살던 산동네가 대대적으로 개발이 되면서 몇년간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새집으로 이사갈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갔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도 가진 것 없는 세입자들은 이주비나 보상 문제에서 소외되거나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었으니 수긍하기 어려웠고 혹여 집..
▲ 지난 10월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방문한 정운찬 국무총리(왼쪽)는 양반다리로 앉아 입장을 발표했다. 부산화재와 관련해 일본인 유가족들을 향해 무릎을 꿇은 모습(오른쪽)과 대조적이다. ⓒ뉴시스 이 사진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음을 느낀다. 부산에서 주말에 일어난 참사로 이웃나라 일본에서 건너온 여행객들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고와 참 비슷한 유형의 대표적인 사고로 볼 수 있겠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의례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관계기관의 안전진단 결과에는 합격이라 하였다니 이면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의심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항상 사고가 난 다음에 지적되고는 하는 관계당국의 사전 조치 미흡, 사고발생후 대피시설 부실 등의 문제로 가닥이 지워지는 같다..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해임이 위법하며 해임처분을 취소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애당초 해임을 하게된 이유는 부실경영,인사전횡,방송 공정성 훼손 등이었는데, 결국 오랜 공방 끝에 승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만신창이가 된 개인의 명예는 물론이거니와 심하게 훼손되어 버린 그리 머지 않은 시절의 KBS의 모습은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한때 정말로 KBS가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 섰던 적이 있었다. 정말로 볼 것도 없고 지나치게 편향적이던 방송이 시대가 바뀌면서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리를 찾아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특히 과거사에 있어 잘 조망되지 않던 어두운 그림자들, 치부,껄끄러운 부분들을 과감히 소개하고 재평가하는 등 예전과는 상당히 다른 길을 모색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시대..
드디어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동안 수차례 만만치 않은 저항끝에 나온 산물이라 더욱 뜻깊은 일로 평가된다. 우리가 1945년 일제가 항복함으로 얻어진 해방이기는 하지만 그 압제로부터 벗어난 이후 과연 깨끗한 새시대를 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독립을 외치던 죄없는 많은 이들이 이렇게 왜경들에게 바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일제시대에 우리민족이 얼마나 핍박받고 고통받았는지 굳이 여기서 거론하지 않아도 될만큼 윗사진 한장으로도 충분히 알 것이다. 우선, 일제로부터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은 박정희 정권과의 수교 조건으로 지불한 돈으로 다 끝났다며 왜 아직도 한국은 왜 그러냐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누가 수긍을 했는가.. 그 조건에.. 그들은 오..
오늘 탤런트 이광기씨 어린 아들의 슬픈 뉴스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겨우 7살인데, 그것도 떨어져 살다가 다시 돌아와 한참 재롱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을 텐데 이런 비보를 접하니 부모로서의 입장은 얼마나 애통할 것인가.. 얼마전에 증세가 있어 병원에 갔으나 플루 음성으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은후 갑자기 기침 증세가 심하여 병원에 갔으나 끝내 눈을 감았다고 하니 애석할 뿐이다. 6살인 본인의 큰아들도 목요일 유치원에서 돌아 왔을때 쳐져 있고 열이 있는 것 같아 동네 근처 소아과 의원에서 간이 진단을 받았더니 음성으로 판정이 되어 그에 따른 처방을 받고 해열제로만 그날 밤을 보냈는데, 아들 녀석은 38~39도를 왔다 갔다하며 기침도 심하게 하는지라 다음날 다시 병원에 가서 사정을..
간만에 미국소 얘기가 아침에 보였다. 그런데 조금은 어이 없다. 어이없는 일이 어디 한두가지겠냐만은, 자기들도 먹지 않는 미국산 소고기를 전경들에게만 먹여 왔다는 것은 저들의 본심이 어디에 가 있는 것인지 또 드러나게 해준다. 2008년 한참 미국소 문제로 전국이 시끄러울때, 정부 당국왈.. "앞으로 1년동안 정부부처가 미국산 소고기를 먹어서 그 안전성을 입증하겠다"였다는데.. 1년간 정부청사에서 구입한 미국산는 단 한건도 없단다. 대신에 경비를 서는 전경부대에 부식으로 지급된 소고기는 미국산 소고기였다는데.. 전경들이 마루타도 아니고.. 왜일까? 유능한 고위직 공무원들께서 정책에 반기를 대놓고 할 이유도 없을테고.. 하도 국민들이 난리를 치니 장담하던 안전성에 회의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애당초 문제가..
자기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매번 그러하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기 싫은 것은 피하려 하는 것은 특성이자 속성이다. 먼 옛날 신문이나 방송이 없을 때도 통용되었던 이말은 현재 시대에서는 발달된 매스미디어의 덕분으로 더욱 피해갈 수 없게 되었으나 굳이 힘과 권력을 동원하여 눈과 귀를 가리려는 자들이 있다. 나는 언론학자도 아니고 더욱이 채널이 부족하여 갈증을 느끼는 시청자도 아니다. 바쁜 오늘날 누가 한가하게 집에서 TV앞에 죽치고 앉아 여유있게 있을 사람이 있는지.. 국민들의 알권리 다양한 채널을 볼 권리.. 다르게 말하면 자기들이 보여 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겠다는 것이지 그렇지 아니한가? 김제동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