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슬픔의 삼각형 정보, 관람평, 출연진, 줄거리, 결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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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칸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학 작품 ‘슬픔의 삼각형’은 사회적 관계와 불평등, 인간들의 추악함을 직설적으로 풍자하고 보여주는 블랙코미디 영화로 인상적인 작품이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에게서 인간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불평등, 격차는 지구상 어떤 나라에나 다 존재하는 문제로 이를 해소하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때로 이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뒤엎을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계급이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의 삼각형은 절대 변하지 않는 구도와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슬픔의 삼각형
영화 슬픔의 삼각형

영화 슬픔의 삼각형 정보, 관람평, 출연진 


“슬픔의 삼각형”은 2022년에 개봉한 루벤 외스틀룬드(Ruben Östlund) 감독의 영화로, 원제는 Triangle of Sadness이다. 2022년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자본주의, 계급 구조, 인간 본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으며 큰 주목을 받았다. 블랙 코미디와 풍자 장르로 분류된다.

슬픔의 삼각형의 감독은 루벤 외스틀룬드, 출연은 해리스 디킨슨, 샬비 딘, 우디 해럴슨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는 스웨덴 출신으로 영화 학교를 졸업 후, 2004년 첫 장편 영화 <The Guitar Mongoloid>를 연출했다.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 가며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고 <슬픔의 삼각형>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감독과 각본을 같이 맡았다. 러닝타임은 2시간 30분으로 비교적 긴 편으로 3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의 내용은 다 연결되어 있다. 여주인공 야야 역을 맡았던 남아공 출신의 샬비 딘은 수상을 한 그해 병으로 사망하여 이 영화는 그녀의 유작이 되었다. 평단과 관객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슬픔의 삼각형 감독
슬픔의 삼각형 감독, 각본을 맡은 루벤 외스틀룬드
이작품이 유작이 된 배우 실비 딘
남자 주인공 칼

영화 슬픔의 삼각형 줄거리, 리뷰, 결말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 모델 커플인 칼(해리스 디킨슨)과 야야(샬비 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패션 업계의 허영과 계급 갈등을 보여준다. 제목인 “슬픔의 삼각형”은 칼이 오디션에서 미간의 주름(스트레스나 슬픔을 상징)을 펴라는 지적을 받는 장면에서 직접 언급된다. 돈을 더 잘 벌고 명성을 얻고 있는 여주인공에 비하여 남주인공은 무명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돈을 내지 않고 남자 친구인 칼에게 미루는 장면은 허세에 찬 우월의식과 경제적 남녀 갈등을 보여준다. 

2부: 인플루언서인 야야가 협찬을 받아 이 커플이 호화 크루즈에 승선하면서 부유층 승객들과 승무원들의 관계와 위계질서를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선을 드러낸다. 악천후로 배가 침몰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승객과 선장의 아무 상관없는 잡담과 기행은 배가 침몰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간다. 종업원들을 하인 부리듯이 수영을 시키고 돈자랑을 하는 가진 자들의 횡포와 무너지는 상황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적나라한 면모가 여지없이 보여진다.  카메라도 역시 심하게 흔들린다. 

3부: 크루즈가 침몰하고 생존자들이 무인도에 표류하면서 사회적 위계가 뒤바뀐다.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데 레온)이 생존 기술로 권력을 잡으며 새로운 질서를 형성한다. 배에서 가장 하층에 있던 새로운 권력자는 그가 가진 기술을 이용하여 잠깐이지만 지배자가 된다. 그리고 그 권력을 이용하여 성적인 유희도 즐기고 그들을 통제한다. 지배자는 바뀌었지만 모순은 그대로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그녀의 구조정은 새로운 모순을 상징한다. 그러나 암컷 당나귀가 남자들에 의하여 사냥을 당하고 그들이 표류된 곳이 실제로는 리조트라는 것이 밝혀지며 뒤집혔던 권력의 삼각형은 다시 바뀔 것으로 나타나며 새로운 지배자는 그 지위를 내려놓을 상황에 처한다. 영화는 애비게일이 돌을 들어 리조트를 보고 안도하는 야야를 내리치려다 주저하는 장면에서 끝을 낸다. 

이 영화는 계급 구조를 삼각형에 비유하며, 그 구조가 뒤집혀도 또 다른 삼각형(불평등)이 만들어진다는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여러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러시아 자본가는 더러운 똥을 팔아 돈을 벌어 들이고, 수류탄을 팔아 돈을 번 방산업자는 아이러니하게 수류탄에 목숨을 잃는다. 똥 부자도 흔들리는 배 위에서 흘러넘치는 똥물을 피할 길이 없다. 위험 상황에서 고상한 척 하던 상류층은 한없이 허우적대고 간신히 살아 표류한 섬에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가장 하층 계급인 청소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자본주의 공산주의를 논하는 선장과 승객의 대화는 이데올로기의 부질함을 상징한다. 삼각형이 뒤집히면서 계급 구조는 바뀌지만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그 구조는 불안하기만 하다. 계급 착취와 폭력은 계속 될 것이며 상황이 변동되면 더한 폭력과 복수, 착취로 이어질 것이다. 결말에서는 애비게일이 돌을 들고 주저하는 장면에서 마무리하며 열린 결말을 택했는데 관객에게 선택을 맡긴 것 같다. 애비게일이 어떤 선택을 했든 삼각형이 전복되었을지라도 폭력과 위계질서는 계속될 것이다.

슬픔의 삼각형은 아무리 뒤집혀도 변하지 않고 슬퍼지는 구조를 제대로 풍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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