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장 수상작 영화 조커(Joker, 2019) 결말, 해석

베니스 영화제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수상을 하며 더욱 잘 알려진 칸영화제, 베를린 영화제와 더불어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수준 높은 영화제 중 하나이다. 2019년 올해는 8월에 막을 내렸는데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 상으로 뽑히는 장편 영화에 주어지는 상은 황금사자상으로 올해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가 수상을 했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조커

이로써 올해 3대 영화제 수상작이 모두 가려졌는데 한국 영화가 당당히 여기에 들어가 있어 큰 성과를 낸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조커는 배트맨에서 배트맨과 맞서는 대표적인 빌런(Villain)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악역이다. 팀 버튼 감독의 작품 배트맨에서는 잭 니콜슨이 조커를 맡아 열연을 펼친 바 있으며 이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는 히스 레저가 조커로 등장하였던 바 있다. 두 배우 모두 악당 조커 역을 맡아 그들만의 특색 있는 연기를 보여준 바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다크 나이트에 출연했던 히스 레저의 연기는 거의 신들린 듯한 혼신을 다한 최고의 연기로 평가하고 싶다. 그의 연기는 다시 그런 조커를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신작 영화 조커에서 다루어진 조커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다크나이트 조커 히스 레저

2019년 신작 영화에서 조커를 맡은 배우는 호아킨 피닉스이다. 그는 글래디에이터에서 악역 콤모두스 역할로 알려진 바 있다. 미남 배우로 유명했던 리버 피닉스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리버 피닉스는 약물 과다로 일찍 세상을 뜬 바 있다. 호아킨 피닉스는 1974년 생이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23kg를 감량 할 만큼 집중하는 열의를 보여주었다.

글래디에이터 콤모두스 역 호아킨 피닉스
호아킨 피닉스

영화 조커는 한국에서는 102일 개봉하였으며 현재까지 296만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며 논란도 많이 있는 영화이지만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불편한 문제와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며 악당의 탄생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임을 말하고 있는 영화로 볼 수 있다. 조커가 등장한다고 해서 히어로 물은 아니고 다소 무거운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 스포일러 포함 **********

영화 조커 결말 해석

영화 조커 배경

지금까지 영화에 등장했던 조커는 배트맨과 맞서는 대표적인 악당 역할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조커가 악당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조커가 어떻게 탄생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치밀한 연출과 소품으로 구성하여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영화 조커에 나오는 OST는 특히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가벼운 팝이 나오는 가 하면 묵직한 느낌의 클래식 선율이 영화의 분위기를 끌어올려준다. 영화를 볼 때는 잘 몰랐는데 끝나고 나서 한 장면들을 기억할 때마다 선율이 절로 떠오르는 것이 장면에 맞게 정교하게 세팅이 된 것 같다. 고담시가 배경이며 무질서한 분위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다.

순수한 모습의 초반부 조커, 아서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조커는 광대로 나오는데 그는 십대 청소년들한테도 맞고 다니며 별 볼일 없는 무기력한 존재이다. 거기에 이유없이 웃음이 나오는 질환과 과대 망상 증상까지 지니고 있어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운 소외 받는 사회적 약자의 모습 그 자체이다. 초반부에 보이는 조커, 아서의 모습은 일면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코메디언을 꿈꾸며 자작 노트도 작성하고 그가 존경하는 TV쇼 진행자 머레이 프랭클린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살아가려 애쓴다. 아직까지는 순수함이 깃든 영혼인데 그의 손에 들어온 총 한자루는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총은 그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며 결말까지 극적으로 이어지는 장치로 남겨지게 된다.

광대 아서
코미디언을 꿈꾸는 아서

그를 바꿔 놓은 것, 총

정작 총을 받고 나서도 그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다. 그러던 중 우연히 총을 발사하게 되고 총이 주는 위력을 알게 된다. 광대 분장을 하고 병원에 가서 광대 공연을 펼치던 중에 지니고 있던 총이 떨어지면서 그는 일자리를 잃고 만다. 아직까지는 누구를 해치려는 목적은 없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예전과 똑같이 이유 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맞는 아서 였는데 그가 발사한 총은 그들을 무너뜨리고 역전되는 순간을 가져 온다. 헐레벌떡 현장을 벗어나고 화장실에 와서 그의 뇌리 속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그는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이제 과거의 아서 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이다. 총으로 사람을 죽이고 나서 그는 주목받게 되고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지하철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첫 살인을 저지른 후 추는 춤

출생의 비밀과 아버지와의 절연

어머니와 다정하게 지내고 효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초반의 아서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근본을 부정해 버리는 행동으로 바뀐다. 아직까지는 기댈 구석이 있었던 부모의 존재였지만 그들로부터 버려지고 학대당했던 과거가 밝혀지며 존재 이유를 잃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엄마를 죽임으로써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게 된다. 아버지라 생각하고 믿었던 토마스 웨인에게서도 처참하게 외면 받고 존경해 마지 않던 머레이 프랭클린이 그를 조롱하는 장면을 보면서 더 이상 그들에게 기대 희망을 잃어 버리고 관계 단절에서 더 나아가 직접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만다. 믿었던 존재로부터 무시 받고 조롱 당하는 상황에 그를 극단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그가 존경했던 머레이 프랭클린
그가 아버지라 믿었던 토마스 웨인

과대 망상, 환상

아서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과대 망상증을 가진 정신병 환자이다. 영화 장면에서 망상으로 비쳐 지는 부분은 두 군데 정도로 보이는데 쇼 프로그램에서 머레이와 무대에 함께 서는 모습, 옆집 여자 소피와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은 다 머리 속에서만 생각한 망상들이다. 그의 망상들이 깨지는 순간 그는 완전한 악인으로 변모하게 된다. 과대 망상 그 자체로는 그의 범죄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 보이지만 지하철에서 세명을 죽인 후 떠올리는 연애 장면 망상은 그의 흥분된 상태를 보여주는 장치로 보인다. 해석에 따라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망상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조커의 망상

계단과 춤

영화 기생충에서 계단은 매우 중요한 메타포로 사용이 되었는데 조커에서도 마찬가지로 계단은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삶에 찌들어 힘들게 높은 계단을 올라가는 아서와 악당 조커로 변신하여 같은 계단을 춤까지 추면서 내려오는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힘들게 올라갔던 삶의 무게를 벗어 던지고 다른 사람이 되어 초연한 모습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은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한다. 그의 춤도 매우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힘들게 올라가던 계단
조커로 완전히 변신한 뒤 내려오는 계단

결말에서 조커는 폭도들에게 추앙 받는 존재로 거듭나고 그가 상담 받던 정신병원에서도 더 이상 무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치 춤을 추듯 자유롭게 오고 가는 초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더 이상 사람들을 웃기지 않아도 되고 이제 그에게 뭔가를 강요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사라진 것이다. 사람들을 웃기려고 꿈을 꾸었던 그가 이런 상황을 코미디였다고 하는 대사가 함축적으로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영화조커명대사

내 인생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자신이 믿어왔던 것이 부정당하고 거짓임을 알게 된 것이다.

분노에 치를 떠는 아서

넌 나에게 잘해준 유일한 사람이었어

난장이를 그냥 보내주면서, 이유 없는 살인은 하지 않는 것일까.

다를 왜 그렇게 무례하죠?

무시하고 조롱 당하는 사회적 약자, 가진 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표현하는 키워드로 무례라는 말을 쓴다.

재미있는 조크가 떠올랐는데 이해를 못할거에요.

어떤 망상을 떠올리며 한 얘기일 듯.

당신도 그들과 같은 쓰레기야

머레이가 그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모습에 그를 죽이기로 마음을 고치며.

그냥 아버지처럼 안아주면 안되나요

토마스 웨인이 그를 안아줬다면 조커는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맺음말

계급, 사회 계층 간의 대립과 갈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항상 존재하는 문제이자 해결되지 않는 숙제이다. 아서처럼 차별 받고 무시 받는 다고 해서 조커와 같은 빌런이 되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폭력의 정당화는 결코 있어서는 안되며 소외 받고 사회적 약자인 사람들에게 좀더 따스한 손길을 내밀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가난하다고 뭔가 모자란다고 가진 자들에게 조롱 받고 놀림 받는 것은 용인되어서도 안된다. 소득의 양극화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이다. 불평등의 구조 속에서 조커 같은 존재는 혼란과 분노를 자양분 삼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돈이 많은 자들을 증오한다는 지존파 사건도 있었던 것을 보면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좀더 관심과 포용이 필요할 것 같다.

평범할 수 있었던 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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