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 5일장, 백선엽 장군 현충원 안장 논란을 보며

2020년 7월 9일과 10일 두 명의 주요 인사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이다. 바로 3선의 서울 시장인 박원순 시장의 사망과 친일 행적과 전쟁 영웅 대접을 놓고 논란을 빚어온 백선엽 장군이 하루 차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를 놓고 우리 사회는 다시 좌우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맞서고 있다.

누군가가 떠나면 평가가 내려질 수 밖에 없는데 박원순, 백선엽 두 사람은 직접적으로 연관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진보와 보수의 양 축을 대표하는 인사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한 것 같다. 두 인물이 살아온 길도 너무나 다른 것인데 그 만큼 사람들이 받아 들이는 생각도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고 박원순 시장
고 백선엽 장군

박원순 시장 비서 미투 논란 그리고 사망


코로나를 맞아 적극적으로 시정을 펼쳐왔던 박원순 시장이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 일정이 상당히 바빠야 할 서울 시장이 갑자기 실종이라니 황당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배경에 박 시장의 여비서로 성추행 관련 고소장이 접수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더 충격적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어떤 사람인가? 박원순 시장은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여러 사건의 성폭력, 성희롱 사건을 맡아 활동했던 인물이며 특히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도 했었다. 평소 페미니스트로 자처하여 왔었는데 다른 것도 아닌 자기의 비서에게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했다고 하니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시절 박원순 시장

정치에 입문하기에 앞서 인권 변호사로 시민 단체 운동가로 명성을 날렸던 그를 많은 사람들은 기억한다. 때묻지 않은 진보 인사였던 그가 서울 시장에 3선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그의 이미지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대선에도 도전을 했지만 뜻을 꺾어야 했는데 사실 아직 그 도전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정치란 생물이기 때문에 코로나를 거치며 그가 재도약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그는 본인의 전 비서로부터 성추행 고소가 들어오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기의 삶마저 내던지는 선택을 하고 만다. 여비서는 구체적인 증거도 있음을 밝히며 거짓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한 것 같은데 사실 여부를 떠나 인권 변호사 출신 박원순 시장에게는 그 자체로 치명적인 중압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 같다.

참여연대 시절
극적이었던 서울시장 선거 참여, 안철수는 조문하지 않기로 했다.

당사자가 사망함으로써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다고 한다. 형사 사건의 피의자 당사자가 세상에 없으니 죄를 더 이상 따지지도 규명할 수도 없다는 것인데 그런 만큼 이 사건은 앞으로 거센 논란과 후폭풍이 예상된다. 진실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검찰은 이대로 수사를 종결했으나 진실까지 덮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정황상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일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박원순 시장 측에서도 당당하게 결백함을 내세우고 상대에게 무고죄를 물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는데 그냥 이렇게 끝나 버린 것이다. 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공적과 과거는 이제 덮어지고 씁쓸한 뒤안길만 남긴 것이다. 

그러니 고 박원순 시장의 조문과 5일장을 놓고 논란이 거세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업적이 많았던 전 시장에게 ‘5일장 서울특별시장’으로 진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그가 결백함을 증명하고 떳떳하게 마무리를 짓지 않고 이렇게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여론은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일각의 주장대로 조용히 가족장을 치르는 것이 더 옳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괜히 논란만 더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망자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겠지만 피해자로 추정되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예의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민주당 출신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추문의 끝은 어디일지 답답한 마음이 든다. 이러면서 어떻게 사회의 정의를 논할 수 있는지 집권 세력의 자만심을 그만 내려놓기 바란다. 

친일파 백선엽 장군


6.25 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도 7월 10일 하루 뒤 세상을 떠났다. 1920년 생으로 우리 나이 100세에 별세한 것이니 천수 그 이상을 누리고 간 것이다. 그 자체가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보여주는 인물이겠다.

그는 일제 강점기 시절 만주지역에서 독립 투쟁을 하던 조선인과 사회주의 계열의 중국 팔로군, 동북항일연군 등을 토벌했던 일제의 간도특설군에 복무했던 경력이 있다. 항일독립군을 토벌하고 소탕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일본군의 조직으로 당연히 여기에 지원했던 조선인들은 친일 성향의 반민족주의자들이다. 여기에 백선엽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전력으로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자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독립군을 때려 잡던 반민족주의자며 일본군 장교였던 사람이 해방 후 반공을 발판으로 재기하고 여기에 6.25전쟁에서 세웠던 전공으로 신분이 세탁되어 전쟁 영웅으로 탈바꿈하였던 것이고 거기에 누릴 것은 다 누리고 100세에 사망하였으니 명이 참 긴 사람이었던 것이다.

간도특설대
독립군을 토벌했던 일본군 소속 조선인 간도특설대

생전에 그가 간도특설군에서 복무했던 행적에 대하여 반성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본인이 상대했던 상대는 공산주의자들이었으며 토벌 과정에서 조선인도 있었음을 인정하였으며 독립을 위해 싸우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은 일본에 책략에 이용당했다는 애매한 발언을 하기도 한 것이 있는데 죄를 인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애당초 간도특설군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들어갔을 리도 없거니와 설령 가서야 알았다면 바로 뛰쳐 나와 독립군에 가담했어야 하는데 순리였을 것이다.

항일독립 투쟁을 그린 영화 봉오동 전투

해방이 된 후에야 일본군에서 나와 그가 살았던 평양에 갔다가 월남하여 한국군 장교가 되고 곧이어 터진 6.25전쟁에서 활약하며 승승장구하며 30대에 나이에 장군이 되고 육군참모총장까지 올라가는 등 군인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박정희 보다는 3살 어리지만 박정희를 여순사건 의혹에서 방면하여 장군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백선엽과 박정희

이런 그가 사망하였는데 역시 국립현충원에 안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수 쪽 시각은 그를 구국의 영웅이라 부르며 서울 현충원에 안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인데 일단 그는 대전현충원으로 가기로 되어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하여 그만큼이라도 대우를 해주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살아 생전 과오에 대한 사죄와 반성도 없었는데 이런 예우를 해줘야 하는지 말이다.

박원순, 백선엽 두 사람의 죽음을 두고 일어나는 이러한 논란을 보며 느끼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잘못된 과거 청산이 안되어 있으며 미투를 대하는 자세도 성숙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쌌던 이 논쟁거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며 생을 마감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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